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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열차표 (박훤일)

2등 열차표를 샀다면 목적지까지 당연히 2등칸을 타고 가야 한다. 예순이 넘어서 지난 생애를 돌이켜 보니 나는 2등 열차표를 사가지고 1등칸에서 편하게 여행을 해왔던 것같다. 나의 재능이나 실력에 비해 과분할 정도로 복을 누리고 살았다.[1] 경제학에서는 소비자의 만족도(효용)가 그가 지불한 가격에 비해 큰 것을 소비자잉여(consumer's surplus)라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Amazing Grace)로 그 많은 잉여를 누려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남은 생애는 미처 내지 못한 승차요금을 지불하듯이 나누고 봉사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크리스천으로서의 믿음이 뜨뜻미지근할 적에 실제로 2등 열차표를 들고 1등칸에서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크리스..

아버지의 초상 (박훤일)

박혁거세 왕의 62세손 박훤일 (朴烜日, 1953 - )은 박내옥-은성덕의 4남으로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전주에서 태어났다. 전주교대부속초등학교, 전주북중학교[1]를 다녔고, 서울 대광고등학교[2]를 마치고 1971년 곧바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였으며, 몇 차례 사법시험에 고배를 든 후 1977년 말 한국산업은행에 들어갔다. 은행에서는 주로 국제금융부와 조사부에서 근무하였는데 88 올림픽 직후 3년간 미국 뉴욕에서 주재원 근무를 하였다. 1986년 네덜란드 정부의 펠로우십을 받아 암스테르담 대학교에서 유럽통합과정(ICEI)을 공부하고, 다시 1993년 미국 댈러스 소재 서던메쏘디스트대학(SMU) 로스쿨에 유학하였다. 1996년 봄부터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야간)에서 매학기 국제거래법을 강의하다..

이홍구

박혁거세 왕의 62세손서 이홍구 (李洪九, 1938 - 2003)는 1938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2003년 10월 1일 세상을 떠났다. 196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주로 (주)동원에서 석탄 등 자원개발 전문경영인으로 활동하였다. 1966년 박내옥 (朴萊玉)의 차녀 박숙희(朴淑姬)와 결혼하여 3남 1녀 (남석, 영섭, 상준, 현정)를 두었다. 장남 남석은 고인의 소망(所望)을 삼중으로 이루었다. 하나는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이고, 둘은 민완검사로서 대검찰청에서 근무한 것이고, 셋은 의뢰인들의 고충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형사 전문 변호사가 된 것이다. 그의 모친 역시 인생의 굴곡이 심했던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나서 효성 많은 장남 곁에 살면서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다고 한..

박훤용

박혁거세 왕의 62세손 박훤용 (朴烜庸, 1939.8.5 ∼ )은 넷째집 박내옥-은성덕의 차남이다. 1939년 남원에서 태어나 전주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다녔다. 1961년 학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1963년 중소기업은행에 들어가 계리과장을 역임한 후 공인회계사(CPA) 개업을 하였다. 1971년 전남 해남 출신의 사업가 김공칠(金公七)의 3녀 김미자(金尾子)와 결혼하여 정윤, 정민, 선민 세 딸을 두었다. 훤용 형님의 고희연 다음은 2008년 7월 26일 서울 COEX Asem Hall에서 열린 박훤용 형님의 고희연에서 필자가 하객들에게 소개한 오늘의 주인공에 얽힌 에피소드이다. 아래 사진에서 한복 입고 앉아 있는 부부가 이날의 주인공 부부이고, 그 가운데 앉아 있는 두 분은..

미국 여행기 (박내옥)

미국 여행기는 넷째집 박내옥 님이 1989년 봄 미국의 서부(LA)와 동부(뉴욕)을 여행하고 쓴 글이다. 평생을 회계 담당 '회사원'으로 근무하셨기에 마치 업무일지를 쓰듯이 보고 들은 사실을 기록하셨다. 당시의 생활상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간 자녀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1] * * *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캐치 프레이즈는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였다.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우리 집안에도 세계로 눈을 돌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4남 훤일 군이 뉴욕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우리 가족의 세계진출 사실 그 전부터 아내가 세계지도를 벽에 걸어놓고 아이들이 나가 있는 곳을 표시하리 만큼 우리집은 상당히 ‘국제화’되어 있었다. 일찍이 1960년대 말부터 3남 훤장 군이 백마부대 용사로 ..

편지 (박내옥)

박혁거세의 61세손 박내옥 (朴萊玉, 1912 - 1996)은 옆에서 지켜보았을 때 그야말로 '어머님 숭배자'이셨다. 젊어서부터 쭉 그렇게 살아오신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노년의 삶은 완전히 '아내를 위한, 아내에 의한' 것이었다. 평생 고생시킨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의 자연스러운 결론이기도 하리라.[1] 아내에게 쓰는 편지 요즘 나는 팔순(八旬)에 즈음하여 당신이 아니었던들 내 인생이 어찌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고 있소.[2] 소심하고 성미 급한 나와는 달리 당신은 성질이 온유하고 말이 없으며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소. 우리 생애의 고비마다 당신과 힘을 합쳤기에 4남 5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이만큼 여유있게 지난 생애를 돌이켜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이것은 당신의 타고난 품성 뿐만 아니라 훌륭하신..

은성덕

은성덕 (殷成德, 음1916.09.04 - 2002.07.26)은 박혁거세 왕의 61세손 박내옥 (朴萊玉) 님의 부인으로 1916년에 태어나 2002년 9월 3일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4남 5녀를 두었으며, 평생 박봉의 남편을 도와 자녀교육에 힘썼다. 고인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나라가 봉건사회에서 민주사회로 발전하고, 또 식민지배하에서 독립을 맞고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치른 후 정치적인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경제개발을 완수한 파란만장한 시기였다. 경제발전의 과실을 따먹고 자란 젊은 세대 특히 젊은 여성들은 감히 고인의 일생을 운위하기 힘들 것 같다. 어떻게 스물도 되기 전에 결혼을 하고 9남매를 낳아 기르며 쪼들리는 살림에 조카들까지 4-5명씩 거느릴 수 있었을까. 당시에는 보편적인 현상이었지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