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집안 이야기

박훤구

parks6263 2020. 8. 15. 16:50

박혁거세 왕의 62세손 박훤구 (朴烜求, 1947 ∼ 2005)는 다섯째집 박기승-김명희의 장남이다.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고등학교, 서울대학교(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미네소타대학교에서 계량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8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노동경제 연구를 담당하였으며[1]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비서관(노동 담당)을 역임하고 1996년 8월부터 2000년 6월까지 한국노동연구원장을 지냈다.
우리나라가 IMF 사태를 맞아 대량해고와 실직이 만연할 때 노동시장의 안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노사정 화합을 위해 분투 노력했다.

그 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5년 7월 30일 58세 생신을 며칠 앞두고 주말 아침 테니스를 하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2]

 

묘비명

고인의 묘소는 천안공원묘지에 있다.

그의 가족이 세운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여기 우리와 함께 했던 한 사람이 잠들어 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사랑한 사람, 자연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땀과 눈물까지도 사랑한 사람,
그 무엇보다 가족을 사랑한 그는 우리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다 나누어 주고 갔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려 했고 이 나라에 노사문제를 위해 온 힘을 다 바쳤다.
그 큰 사랑과 노력에 지쳐 쉬고 싶었을까 너무나 일찍 우리 곁을 떠나버린 그대.
이제 그 모든 짐을 내려 놓으소서 남은 것은 우리에게 맡기고 부디 편히 쉬소서.

          처  김광희
          장남  경원
          차남  준원

 

세노야

고 은 시인의 시에 젊은 시절 아내 김광희(서울대 음대 겸임교수)가 곡을 붙이고 가수 양희은이 불러 전국민이 애창했던 이 곡은 고인의 삶을 함축적으로 노래하는 것 같다.[3]

 

세노야 세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저 산에 주고
슬픈 일이면 님에게 주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고
슬픈 일이면 내가 받네

 

세노야 세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Note

1] KDI 시절 박훤구 박사의 저술은 KDI 연구보고서 목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2] 고인은 같은 "훤"자 돌림자를 쓰는 사촌으로서 자랑거리였다. 누가 한글이든 한자든 "훤"자를 잘 못 읽을 때면 "박훤구 박사"를 모르느냐고 반문하곤 했다. 이와 같이 고인은 어른들에게는 집안의 자랑이었고 손아래 동생들에게는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다. 고인은 "훤"자를 영어로는 "Fun"이라고 표기하는 등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두루 배려심이 많은 분이었다.

 

3] "세노야"는 남해안의 멸치잡이 어부들이 부르던 노동요의 후렴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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