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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용 아주버님께 (신소희)

섭용 아주버님께, 안녕하세요. 훤일 동생의 처 신소희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저희 네 식구는 하나님이 보호해주사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둘째(영철이)가 제가 원하는 곳(OOO시험연구원이라는 공기업)에 취업이 되어 한시름 놓았습니다. 저는 잡지출판사업을 시작한지 올해로 10년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직원은 170명으로 늘었고 매출도 500억원 가까이 되었습니다.[1] 지난 7월에는 강남 차병원 부근의 역삼동에 대지 150평을 구입하여 15층 신사옥 건축을 추진 중입니다. 되돌아보면 제 능력은 보잘 것 없고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와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 이룬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규모가 커진 만큼 걱정거리도 많지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하루하루 살..

수필・편지글 2020.08.15

초등학교 은사를 찾아서 (박섭용)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필자는 "고향 운봉"하면 여러 가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중에서 이 글의 주인공인 일본인 은사(恩師)도 빼놓을 수 없다. 다음은 몇 차례의 서신왕래 끝에 운봉초등학교 시절의 일본인 은사를 극적으로 재회한 후 그 소감을 동창회보에 기고한 글이다.[1] 이를테면 프로처럼 편지가 70년 전의 은사와 제자가 재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은사(恩師)를 찾아서 운봉의 지리적 환경 나는 운봉(雲峰)이라고 하는, 지리산록 해발 600m의 고원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이곳에서 20km 더 가면 경남 함양이고, 서쪽으로 20km 고개로 내려가면 춘향전으로 유명한 남원이다. 또 남쪽으로 20km 가면 화엄사로 유명한 전남 구례에 당도한다. 이렇게 운봉은 전남, 경남, 전북의 경계..

수필・편지글 2020.08.15

고재혁

고재혁 (高在爀)은 넷째집 4남 박훤일의 맏동서이며, 1928년 4월 16일(음 閏2월 2일) 전남 담양군 창평(昌平)면 삼천(三川)리에서 농부가 아니면서 농사를 짓는[1] 아버지(高光韓)의 막내로 태어났다. 2019년 9월 4일(음 8월 6일) 밤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91세. 창평은 장흥 고씨의 집성촌이다. 장흥 고씨는 흔히 창평 고씨로 알려져 있으나 본래 임진왜란의 의병대장이었던 제봉 고경명의 후손들이다. 금산 전투에서 고경명과 함께 전사한 둘째 아들 학봉 고인후의 후손이 장흥 고씨의 학봉파를 이루고 창평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사진 설명] 1984년 법의 날에 우리나라 법치주의 창달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 집안 내력 창평 고씨로 불리게 된 연유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

회고록 2020.08.15

신용우

고령 신씨 신용우 (申庸雨, 1912∼1989.12. 4) 님은 넷째집 4남 박훤일의 장인이다. 박내옥 (1912-1996)과 같은 임자(壬子)생으로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되는 삶을 사셨다. 두 분 모두 일제강점기 전라도의 벽촌(승주군 쌍암면 : 남원군 운봉면)에서 태어나 가업인 농사를 지어야 하는 숙명을 벗어던지고 신식 교육을 받았다. 형제가 많았고 현모양처형 아내를 만나 많은 자녀(둘 다 4남 5녀)를 둔 것도 같았다. 그러나 후자(박내옥 님)가 여러 차례의 난관을 헤쳐나오면서 순응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전자(신용우 님)는 난관을 극복할 때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한 단계씩 상승하는 삶을 개척하였다. 운봉 박씨 집안의 사돈이자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도지사를 역임하였고 특히 외손인 박영진과 박영철에게..

회고록 2020.08.15

안부편지 (박내옥)

아래의 편지는 넷째집 박내옥 님이 미국 LA에 사는 조카 박섭용에게 보낸 편지이다. 1989년 봄에 미국에 가서 만났던 것 과 그해 운봉 가을걷이에서 백미 한 가마를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섭용 군 즉전 (펴보게) 1989년도 꼭 1개월 반만 남았구나. 유수 같은 세월이라 하였거늘 고희(70세)를 넘기고부터는 날과 달 가는 것이 더 빠른 것 같다. 미국에서 조카와 작별한 지가 반년이 되었으니 말이다.[1] 조카 내외를 위시(비롯)하여 홍균이, 양선이, 계연이 온가족이 하나님 은총 아래 건강하며 만사가 잘 이루어지기를 축원하노라. 숙부 내외는 고희도 훨씬 넘긴 나이에 이만한 건강과 풍요한 생활을 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항상 감사드린다. 이곳은 대소가(집안)들이 무고하니 다행이..

수필・편지글 2020.08.15

박내옥

사람은 일생 동안 적어도 세 차례의 고비를 겪는다고 한다. 나 박내옥(朴萊玉)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1] 지난 80 평생을 돌이켜볼 때 어렵고 힘든 고비를 무사히 넘긴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생각이 든다. 많은 동포들이 고생하였던 8.15 해방과 6.25 사변 중에 生死의 기로를 헤매지 않은 것만도 얼마나 행운이랴![2] 지금 돌이켜볼 때 내가 가정을 이룩하고 나서 봉착했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인 애로였다. 평생 월급쟁이를 하였으니 큰 돈 만질 기회도 없었으려니와 무엇보다도 많은 식구를 먹이고 가르치기가 결코 용이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기억에 남는 가장 힘든 시기는 우리 가족이 모두 서울로 올라온 뒤의 5년간이었다. 1966년 해방후 20년간 봉직했던 전라북도 약품회사가 사실상 영업을 ..

회고록 2020.08.15

자서전

전자족보인 운봉 박씨 이야기에 가족 구성원의 자서전 (自敍傳)도 실었으면 좋겠다. 인생은 자서전을 쓰기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도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자서전 하면 성공한 기업인이나 정치인, 유명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자서전을 쓸 수 있다. 아니 생각 나는 대로 회고담을 적는 회고록도 좋을 것이다. 자서전 쓸 거리 다음의 질문에 답을 적다 보면 저절로 자서전이 완성된다. 마치 머릿속에 잠자던 옛날 기억이 팝콘 터지듯 톡톡 튀어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꽃피는 내 고향 부모님과 나, 가족 이야기 탄생의 비밀, 태몽 어린 날의 꿈 기쁘고 기쁜 날 인생의 전환점 내 인생의 멘토, 잊을 수 없는 스승 일과 경제 나의 희망사항 내가 아끼는 보물, 첫사랑 행복했던 순간, 불행했던 순간 꿈과 열정..

회고록 2020.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