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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내옥

박내옥(朴萊玉) (음1912.05.16 - 1996.08.25)은 시조 박혁거세 왕의 61세손으로 1912(壬子)년 7월 1일 운봉에서 태어나 1996년 10월 7일 세상을 떠났다. 1932년 전주고등학교(全州高普) 졸업 후 금융조합에 입사하여 무주, 남원 등지에서 근무하였다. 1946년부터 주로 미국의 원조물자인 의약품을 취급하던 전북약품(주)에서 재직하였고, 1975년 농업용 비닐을 제조 판매하는 서울일신화학(주)의 감사 직에서 정년퇴임하였다. 평생 회계업무를 담당하였기에 기록 남기기를 좋아했으며, 은퇴 후에는 등산과 여행 등으로 유유자적한 여생을 보내고 기독교의 믿음을 자손들에게 전하였다. 1934년 학교동창인 은성룡의 소개로 당시 무주군청의 재무과장이던 은치황(殷致黃)의 장녀 은성덕 (殷成德)과 ..

박화옥

박화옥(朴華玉) (음1908.5.25 - 1950.8.16)은 박혁거세 왕의 61세손이다. 박승재 님과 안동 김씨의 3남으로 쌍둥이 아들 중 동생이었다. 국운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1908년 운봉에서 태어나 교사를 천직으로 알고 청소년 교육에 힘썼다. 해방 전부터 초동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는데 6.25 사변 중 그의 처사에 앙심을 품은 학부형의 밀고로 인민군에게 붙잡혀 1950년 뜻을 펴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 하였다. 교사를 하기까지 자녀교육을 중시하는 가풍에 따라 기옥(琪玉)과 화옥(華玉) 쌍둥이 형제는 일찍이 대처(大處)로 나가 공부를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수재만 들어갈 수 있었던 전주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형제가 나란히 합격하여 서로 경쟁하고 의지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당시 전라선 철도가 놓이기..

김창섭 (박진성)

전북 남원 출신 김창섭 (金昌燮)은 박혁거세 왕의 62세손인 둘째집 장녀 진성(珍性)의 부군이다. 슬하에 김원재, 선화, 선미, 선실 등 1남 3녀을 두었으며, 2013년에 회혼을 맞았다. 서울대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마포에서 약국을 경영하다 1973년 미국에 이민하여 LA 지역에서 보험업에 종사하였다. 첫째집 섭용과 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LA 한인문인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2008년 1월 넷째집 처남(박훤일)[1]이 LA 북쪽교외의 몬트레이팍에 사시는 진성 누님 내외분께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LA 리틀도쿄에 있는 고급 일식당(Sushi Gen)에 데리고 가서 저녁을 사주셨다. 그리고 결혼 25주년을 맞는 처남에게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2]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이야기지만 ..

박준용 (1963 결혼식)

박혁거세 왕의 62세손 박준용 (朴濬庸, 1935.12.19 ∼ )은 둘째집 박기옥-이규아의 장남이다. 1935년 남원에서 태어나 전주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했다. 1961년 농업진흥공사에 들어가 전남지역본부장을 역임하였다. 주로 수리관개 엔지니어링과 농업행정에 종사하였으며 은퇴 후에는 첨단 인터넷 통신을 익혀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겼다. 지인들에게 소운(素雲)이라는 아호를 가지고 좋은 글과 사진, 특히 여행기와 건강정보를 전파하는 것을 큰 낙(樂)으로 삼았다. 1963년 전북 부안 출신의 신소영(辛素英)과 결혼하여 석균, 은경, 성균 등 2남 1녀를 두었다. 19대 국회의원(새누리당)을 역임하고 그 전과 후에 두 차례 대한간호협회장으로 활동하는 신경림 교수가 처제이다.[1] 결..

가족소풍 (1979)

응답하라 가족소풍! 2013년 TV 드라마에서 최대의 화제작은 "응답하라 1994"[1]가 아닌가 싶다. 1994년에 신촌에 있는 대학을 다니던 젊은이들의 좌충우돌 학창시절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나이 지긋한 연배의 많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한 이유는 오늘날과 너무나 대비(contrast)가 되는 그 시절의 모습과 그 때 사람들의 의식구조 단면(아마도 젊은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놀았을 세대차이 관념?)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회 각 부문에서 "응답하라 OOO"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보자 하나의 신호탄이 되었다. 이를테면 "응답하라 가족소풍"이라 했을 때 무엇이 떠오를까?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옛날 옛적에 우리들의 소풍은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봄소풍, 가을소풍이 ..

박을용 (추모)

박을용 (朴乙鏞, 1936. 6. 5 - 2004. 4. 12) 님은 벌써 오래 전 2004년에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고인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한동대학교 동료교수와 제자들이 인터넷[1]에 올린 추모의 글들을 여기 전재한다. 추모사 한동대 교수 김학철 박을용 교수님의 마지막 일년은 죽음 앞에서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시고 싶었던 말씀을 다 담으셨습니다. 그리스도 고난의 증인으로서 그리고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면서도 학생들을 향하여 ‘사랑’이라는 한마디를 남기시고 기운이 진하여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아무것도, 대수술도 박교수님의 꿈을 앗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해 봄 대수술을 받으신 후에도 한동을 향한 소망은 포기할 수 없는 것..

박을용 (2004 장례식)

박혁거세 왕의 62세손 박을용 (朴乙鏞, 1936. 6. 5 - 2004. 4. 12)은 1938년 전라북도 남원군 운봉에서 태어나 2004년 4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하버드 대학 정치경제학 박사로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원과 한동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였으며, 온누리교회 장로로 시무하였다. 1969년에 조 형(趙馨)과 결혼하여 아들 유진(惟辰)을 두었다. 장례식은 2004년 4월 14일(수) 하용조 목사의 집전으로 온누리교회장으로 거행되었다. 묘소는 문막 온누리교회 묘지에 있다. 생애와 업적 2004년 부활절을 보내고 하늘나라로 가신 박을용 장로님의 약력을 소개합니다. 고인은 1938년 6월 5일 지리산 자락의 전북 남원군 운봉면 서천리에서 태어나서 1957년 전주고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셨..

홍난파 (박호현)

운봉 박씨와 사돈을 맺은 집안 중에는 걸출한 인물이 적지 않다. 박혁거세 왕의 62세손 박호현 (朴皓炫, 1932.10.20 ~ ) 의 장인 난파 홍영후 (蘭坡 洪永厚, 1898 ~ 1941)도 그 중의 한 분이다. 유난히 폭염이 심했던 2013년 여름 난파 음악상 수상거부 소동이 벌어졌다.[1] 수상 예정자였던 음악인들의 올곧고 외곬수 성격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옥고를 치르고 그때 얻은 병마로 일찍 세상을 뜬 난파 선생의 삶에 비추어보면 오해[2]가 빚어낸 해프닝이었다. 그들은 "봉선화", "고향의 봄", "성불사의 밤"을 통해 난파가 우리 민족에 전해주려 한 메시지에는 귀를 닫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비오는 날 한길에 끌려 나갔다가 흙탕물 세례를 받은 것을 보고 나무라는 격이 아..

나의 꿈 (박섭용)

나의 꿈은 여든이 넘은 어느 이민자의 꿈이 어린 고백이라 할 수 있다. 박혁거세 왕의 62세손 박섭용(朴燮鏞, 1928.12.6 - 2016. 4.12)은 운봉 박씨 집안의 종손(宗孫)이었다. 그는 1978년 5월 미국 로스안젤레스로 이민을 떠나 홍균, 양선, 계연 등 1남 2녀를 UCLA 등 명문교에 진학시키고 새 땅에서 기반을 잡게 한 다음 은퇴하였다. 그럼에도 항시 집안의 종손임을 잊지 않고 고향 운봉을 그러워하는 글을 여러 편 동창회지 등에 기고하였다. 아래 소개한 글도 그 중의 한 편이다. 다음 사진은 2012년 여름 미국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 중에 아들 내외, 두 딸, 사위, 손주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다. 나의 꿈 친애하는 S형에게,[1] “나는 꿈이 있네”라 하니 1963년 미국 워싱턴D..

박섭용

박섭용(朴燮鏞, 1928.12.6 - 2016.4.12, 아호는 梅山)은 박혁거세 왕의 62세손으로 운봉 박씨 집안의 종손(宗孫)이다. 그는 1978년 5월 미국 로스안젤레스로 이민을 떠나 홍균, 양선, 계연 등 1남 2녀를 UCLA 등 명문교에 진학시키고 새 땅에서 기반을 잡게 한 다음 은퇴하였다. 2016년 4월 향년 88세로 소천하였다. 봄길 같은 사람 필자(박훤일)가 섭용 형님을 생각할 때면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한 집안의 어른으로서 대소사를 가리지 않고 서로 좋은 말을 전하시며 화목을 다지셨다. 이민을 가신 후에도 고향 선영을 돌보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하셨다. 봄 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