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집안 이야기

박을용 (추모)

parks6263 2020. 8. 15. 13:55

박을용 (朴乙鏞, 1936. 6. 5 - 2004. 4. 12) 님은 벌써 오래 전 2004년에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고인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한동대학교 동료교수와 제자들이 인터넷[1]에 올린 추모의 글들을 여기 전재한다.

 

추모사

한동대 교수 김학철

 

박을용 교수님의 마지막 일년은 죽음 앞에서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시고 싶었던 말씀을 다 담으셨습니다. 그리스도 고난의 증인으로서 그리고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면서도 학생들을 향하여 ‘사랑’이라는 한마디를 남기시고 기운이 진하여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아무것도, 대수술도 박교수님의 꿈을 앗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해 봄 대수술을 받으신 후에도 한동을 향한 소망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동인들의 기도로 얻은 생명, 한동 학생들을 위해 사용하시겠다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자고, 한동의 무너진 곳을 보수하자고, 그리고 세상을 바꾸자는 꿈이 있는 박교수님은 영원한 청년이셨습니다.

 

청년 박을용은, [성치 않은 몸으로] 시카고까지 가서 세미나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크리스천 리더십’이라는 강좌를 열었습니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약한 육신을 이끌고 강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생명으로 생명을 낳은 것이죠. 이로써 학문과 신앙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인 본을 보여주심으로써 교실의 한계를 깨셨습니다. 세계 지식격차의 벽을 허물고자 인터넷 봉사단을 만들어 불안과 박탈감으로 신음하고 있는 세계 각국을 찾아다니셨습니다. 그리고 개학 때가 되면 손을 흔들어 환하여 웃으시며 돌아오시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지금도 두어 달 후에 교수님께서 하이 파이브로 인사하시며 돌아오실 것만 같습니다.

 

근검절약 하시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월급을 장학금으로 내놓으시기를 즐겨하시던 그 모습이 이제는 남아있는 우리에게 좋은 형님으로 좋은 이웃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갈대상자 회원 5만명을 위해 눈물 흘리시며 기도하시던 모습이 우리에게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시고 학생들과 한동대학을 위해 함께 기도하시며 병상에서도 세계선교를 위해 생을 바치시기를 원하시던 모습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삶을 투자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박을용 교수님은 영원한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이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양성하는 하나님의 대학의 기초를 놓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조 사

한동대 김나영

 

2002년도 여름 어느 날 저는 교수님을 처음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파키스탄에 선교사님으로 사역하시는 저희 부모님을 만나시고는 저를 한 걸음에 찾아오셨었습니다. 저녁을 사 주시는 하얀 백발의 교수님에 대한 첫 인상은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습니다.

그 날 교수님이 저에게 던지셨던 첫 번째 질문은 "What is your vision?"(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니?)이라고 저에게는 매우 색다른 질문이었습니다.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며 저는 교수님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사랑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교수님은 교수님을 아버지로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로 제가 교수님의 강의조교(TA)가 되면서 교수님은 저의 아버지이시자 스승이 되셨고, 저는 교수님의 딸이자 제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교수님의 한동을 향한 깊은 사랑과 가르침을 이 시간에 나누고자 합니다.

박을용 교수님과 일하면서 느낀 교수님은 열정이 가득한 프로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교수님 옆에서 덤벙대면서 도와드리던 저는 어쩌면 방해가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 가득한 가르침과 꾸중을 통해서 저는 교수님의 열정과 넓은 마음, 그리고 사랑을 배워왔습니다. 아무리 바쁜 중에 계시더라도 교수님은 사무실을 문 두드리는 학생이 있으면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지으시고 한 사람 한 사람 기도해주시고 안아주셨습니다. 너무 많은 학생들이 찾아와서 귀찮으실 만도 한데요... 교수님은 한 번도 학생들을 그냥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던 2003년 봄! 교수님은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아산병원에 입원해계실 때에 교수님은 저를 보자마자 교수님 아픈 것은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저희 부모님의 평안과 저의 건강을 먼저 물어보셨습니다. 아픈 분은 교수님이었지만 교수님은 그 때에도 제 손을 꼭 잡고 눈물 흘리시며 학생들과 한동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13시간의 대 수술 후에 교수님과의 첫 번째 전화통화에서도 교수님은 또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어떠시니? 건강하시니?" 이러한 교수님의 사랑은 비단 저만 느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교수님은 스스로보다 학생들 하나하나를 염려해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수술 후 교수님께서는 한동대학이 진정한 하나님의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크리스천 리더십 강의를 개설하셨습니다. [투명 중에도] 교수님은 절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시지 않았습니다. 늘 하나님의 사람과 한동을 향한 열정을 소망 가득한 눈빛으로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교수님은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이유가 크리스천 리더십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수업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으셔도 단 한 번도 거르신 적이 없었습니다.

교수님은 "한동은 한국의 소망이다. 한동은 다른 학교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한동은 빨리 깨어나야 해..."라고 말하셨습니다. 이러한 교수님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던 수업은 늘 감동과 눈물, 웃음과 사랑이 풍성했습니다. 교수님은 수업시간 중에 눈물 흘리시면서 부탁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먼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양보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라고 하시며 눈물을 흘리시곤 했습니다. 저희들도 그런 교수님을 따라 함께 울었고요.

 

교수님은 저희의 아버지셨습니다. 혹시라도 자녀들이 아침을 못 먹을까봐 매주 목요일 1교시에 있던 수업에 교수님은 우리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셨습니다. 우리를 영과 육으로 풍성하게 해 주시던 교수님은 지난 겨울에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고 그 와중에서도 크리스천 리더십 클래스를 걱정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교수님의 건강을 물을 때에는 늘... "Oh~~ I am fine, I am getting better~"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저희는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정말 괜찮으실 줄만 알았습니다.

교수님, 저희는 이렇게 멋진 교수님을 만나서 너무 행복합니다. 늘 헤어진 바바리 코트를 입고 아름다운 은색 머리카락을 휘날리시며 뛰어다니시던 교수님... 이제 교수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저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합니다. 교수님께서 전해주신 사랑이 기억날 때마다 저희는 또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저희 때문에 속상해 하시던 교수님의 마음 더 큰 사랑과 열정으로 안아주실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수님... 교수님이 그렇게 전달해 주고 싶어 하시던 그 뜨거운 꿈과 소망이 이젠 저희 안에서 새 생명으로 피어오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수님, 그렇게도 바라시던 하나님의 대학, 한동대학이 변화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학이 되는 것... 교수님, 저희가 하겠습니다. 저희가 교수님의 큰 사랑에 빚진 제자들이 되어 한동과 세상을 변화시키겠습니다. 어려운 길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교수님의 사랑과 교수님을 보내주신 예수님의 뜻을 생각하며 하나 하나 변화시켜 나아가 보겠습니다. 교수님, 가시기 전에 외우시면서 아멘하시던 말씀 기억하시죠?

"I will not die but live, and will proclaim what the LORD has done."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시편 118:17

교수님, 당신은 주님 곁으로 가셨지만, 당신의 소망은 여기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겠습니다. 교수님,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박을용 컨퍼런스(안)

한동대 졸업생 김부열 (미 콜롬비아대 개발학 박사과정)[2]

 

고 박을용 교수님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발전론을 전공하시고 세계은행, 유엔개발계획(UNDP), 아태경제협력체(APEC) 등의 국제기구에서 저개발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일해오시다가 1996년 한동대학교가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경영경제학부 교수로 부임하여서 부총장직을 감당하셨던 분입니다. 2003년 췌장암 말기판정으로 소화관련 장기 대부분을 절제하는 13시간의 대수술을 받으신 후에도, “한동대 학생들을 남다르게 키우고, 가난하고 어려운 세계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도록” 가르치시기 위해 크리스천 리더십 과정을 개설하셨고, 2004년 4월 소천하시기 전까지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전문지식을 들고 세상에 나가 약한 자와 가난한 자를 섬기며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섬기는 지도자”가 되라 가르치시며 학생들을 태국, 라오스, 몽골, 우즈백 등의 저개발국가로 보내 섬김의 리더십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박을용 교수님의 비전과 헌신이 한동대 곳곳에 뿌리 내려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7년 유네스코(UNESCO)는 개발도상국 21개국의 대학 및 기관을 대상으로 교육원조를 주관하는 대학으로 한동대학교를 지정하였고, 선진국 내 대학교들의 국제개발협력 분야 참여를 요청하며 2010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이 설립을 주도하신 UN Academic Impact 사업에서도 한동대가 국제 중점 대학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글로벌 전공 봉사활동(GEM)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200여명의 재학생들이 말라위, 인도, 차드, 탄자니아와 같은 최빈국에 방문하여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재학생들이 동부 아프리카 르완다에 베이커리를 설립하여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하는 국제개발협력의 참신한 모델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동을 졸업한 동문들 상당수도 박을용 교수님의 간절한 바람대로 섬기는 리더쉽을 가지고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월드비전, 컴패션, 유니세프 등과 같은 국제개발 NGO 및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동문들만 해도 손에 꼽을 수 없으리만큼 많고 분쟁지역 팔레스타인에서 국제협력단 소장으로 파견되어 일하는 동문도 있습니다. 태국, 캄보디아, 피지 등 저개발국가에 선교사로 나가있는 동문들도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2014년 고 박을용 교수님 소천 10주기[를 계기로 고인의 뜻을 기리는 국제 컨퍼런스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한동에서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시며 한동인들에게 전하고자 하셨던 박을용 교수님의 숭고한 가르침을 기억하며, 박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던 제자들, 저개발국가에 선교사로 나가있는 동문들,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재학생들과 동문들 그리고 한동 교수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경험과 꿈을 나누는 '박을용 국제개발협력 컨퍼런스'를 열면 어떨까요? 재학생들의 참신하고 패기넘치는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 사례들을 발표하고, 동문들은 삶으로 살아내는 국제개발협력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발표되는 사례들을 잘 정리하고 학술적으로 평가하여 국내 빈약한 국제개발협력 문헌에 기여하는 컨퍼런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정기적으로 컨퍼런스를 기획하여, 해를 거듭할 수록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하는 컨퍼런스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싶습니다.

 

Note

1] 에스더 기도운동, 2008. 3. 28.

2] 김부열, (한동에 고함) "박을용 컨퍼런스를 제안합니다", 한동신문 제190호, 2013.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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