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편지는 넷째집 박내옥 님이 미국 LA에 사는 조카 박섭용에게 보낸 편지이다.
1989년 봄에 미국에 가서 만났던 것 과 그해 운봉 가을걷이에서 백미 한 가마를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섭용 군 즉전 (펴보게)
1989년도 꼭 1개월 반만 남았구나.
유수 같은 세월이라 하였거늘 고희(70세)를 넘기고부터는 날과 달 가는 것이 더 빠른 것 같다.
미국에서 조카와 작별한 지가 반년이 되었으니 말이다.[1]
조카 내외를 위시(비롯)하여 홍균이, 양선이, 계연이 온가족이 하나님 은총 아래 건강하며 만사가 잘 이루어지기를 축원하노라.
숙부 내외는 고희도 훨씬 넘긴 나이에 이만한 건강과 풍요한 생활을 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항상 감사드린다.
이곳은 대소가(집안)들이 무고하니 다행이다.
숙부는 10월 23일 운봉에 가서 성묘하고 24일에 돌아왔다.
조모님 묘는 떼(잔디)가 죽은 곳이 많았고 증조부모님 묘소에는 잡초가 많아 산 관리인 박광덕에게 내년 봄 한식에는 떼를 보수하도록 당부하였다.
너의 어머니 묘소는 양지 바른 남향이며 물이 난다는 것은 진실이 아닌 것 같다.
향선이, 광덕이(산지기)와도 의논했지만 현 장소가 좋은 것 같다.
군(네)이 기회보아 귀국하여 잘 살펴본 후 묘비 등도 건립함이 좋겠다.
관리인 박씨는 성실한 사람이다.
묘주가 다 타지에 있으니 묘 관리를 잘 해달라는 당부도 했으며 촌지 금 일만원을 주었다.
23일은 쾌청한 가을날씨라 돌아오는 길에 꽃샘가리, 옥당거리, 운봉초등학교, 북천리 구 장터, 서천리로 돌면서 운봉의 발전된 모습을 보았고 옛날 나의 유년시절을 회상했을 때 감개가 무량하였다.
홍균 군의 결혼을 서둘러야겠다.
양선 양은 결혼하게 되었다는데 용모가 수려하고 재질이 우수하니 좋은 규수감이니라.
이상으로 오늘은 이만 줄인다.
1989년 11월 15일
서울에서 숙부 씀
PS. 오늘 운봉에서 백미 1가마 보내와 잘 받았다.
우리 3개월 양식이 되겠구나.
Note
1] 1989년 봄 박내옥-은성덕 부부는 미국 뉴욕에 주재원으로 파견 나간 4남 박훤일의 초청으로 LA에 사는 박훤장, 박은희 집을 방문하였고, 박섭용을 비롯한 일가친척을 만나고 두 달만에 귀국하였다. 미국 여행기(박내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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