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집안 이야기

해외출장 (박기승)

parks6263 2020. 8. 15. 16:40

우리나라가 1988년에 올림픽을 개최할 때까지 일반 국민은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니 해외이민은 말할 것도 없고 집안의 누가 해외유학이라도 떠날라치면 일가친척이 김포공항에 나가 송영대에서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하곤 하였다.

지금은 이웃 마실 다니듯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있지만, 국제수지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정부가 해외여행을 자유화할 때까지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1]

 

하지만 다섯째집 박기승 님은 예외였다.
농림부와 토지개량조합연합회 공직에 계실 때에도 해외출장을 많이 다니시곤 하였는데,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서 근무하실 때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가 있는 태국 방콕을 거점으로 FAO 본부가 있는 이태리 로마는 물론 세계 각지로 출장여행을 다니셨다.

박기승 님은 해외출장 중에 바쁜 시간을 내어 조카들과 동생을 찾아보시고 격려를 해주시곤 했다.

필자(박훤일)가 뉴욕에 근무할 때에도 필라델피아에 사는 조카(박호현) 집으로 찾아오라고 하시고,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니 사촌끼리 왕래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말씀하셨다. 박규홍 님이 KOTRA 중동지역 임원으로 나가계실 때에는 로마 출장 길에 찾아가셔서 피라미드 앞에서 형제가 기념사진을 찍으시기도 했다.[2]   

 

우리나라가 수교하기 전의 소련(지금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도 여러 차례 방문하셨다.
아래의 그림 엽서는 1979년 9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출장 가서 미국 LA에 갓 이민 간 조카 박섭용에게 부친 편지이다.

 

 

섭용에게                  9월 8일

 

그간 건강히 잘 있으며 딸내미(양선이)도 이제 LA 학교에 다니게 되었는지?
창섭이(박진성)네도 잘 있는지?

나는 여기 중앙 아시아 타슈켄트[3]라는 데 세미나가 있어서 8월 22일 방콕을 떠나 모스크바 경유 여기 와 있다.
기후가 건조하고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 농산물이 풍부하다.
시베리아에서 온 한인들이 25명이나 있어 더러 만나 보았다.
9월 10일에는 돌아간다.

 

Note

1] 1989년 1월 1일 관광 목적의 출국허용 연령기준이 철폐되면서 전 국민의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되었다. 이는 경제성장으로 국민 대다수가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고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르면서 높아진 국제화 수준에 기인한 결과였다.

 

2] 해외출장을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공무로 떠난 출장 기간 중 틈을 내어 자비를 들여가며 친인척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승 숙부님은 Studying further (석박사 학위과정) 못지 않게 Going abroad (해외진출)를 높이 평가하시고 유학이든 이민이든 주재원 파견이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3] 1979년 당시만 해도 타슈켄트가 속한 우즈베키스탄은 소련의 위성국으로서 위의 발신자 주소지도 USSR로 되어 있다. 박기승 님은 댐 건설을 통한 수리관개 전문가로서 박정희 정부 이래의 지하수 개발 우선정책을 포기할 때까지 해외에서 더 주목을 받으셨다. 이점을 간파한 일본의 학자들은 도쿄대학교의 박사과정 입학을 적극 추천하고 당신의 노하루를 체계화하여 학술논문으로 남겨놓게 하였던 것이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동남・남아시에 있어 벼농사 관개사업의 비교연구: 농민참가의 실태와 개선방향에 대한 해명을 중심으로"(東南・南アジアにおける稲作潅漑事業の比較研究: 農民参加の実態と改善方向についての解明を中心に), 도쿄대학교,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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