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신 아버지(박내옥)는 약주가 거나해지면 시조 창을 하셨다. 그 덕에 나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청산리 벽계수야 …”[1] 시조를 따라 읊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아버지가 내가 쓴 일기를 읽어보시고선 “문학적 소질이 있어 보인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사실 교내외 백일장 대회에 나가 여러 차례 상을 받기도 했거니와 아버지의 말씀이 내 평생 보고서든 논문이든 수필이든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버지의 작품으로 남아 있는 것은 팔순기념문집에 실려 있는 다음의 시조이다. 초로(草露) 인생 박 내 옥 삼각산(三角山)[2] 네 모습은 예나 다름 없건마는 내 홍안(紅顔) 간 데 없고 백발(白髮)만 흩날리네 초로(草露)의 삶이 뭔지 이제야 알까 하노라 우리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전주고등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