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편지글

미국 로스쿨 유학기 (박훤일)

parks6263 2024. 8. 28. 00:30

'교육(敎育)'을 중시하는 박씨 집안의 가풍을 좇아 넷째집의 4남 박훤일은 은행 재직 중 유럽의 암스테르담 대학교에서 1년 디플로마 과정을 이수하고, 학부 전공을 살려 미국 로스쿨의 비교법석사(LL.M.)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경희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2000년 학위를 받자마자 경희대 법과대학의 전임강사로 전직, 2018년 정년 퇴직할 때까지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상법, 국제거래법, 금융법, 개인정보보호법을 가르쳤다. 학교에서 처음 맞은 안식년에는 UCLA 로스쿨로 가서 관심있는 주제를 연구하였다.

다음은 한국산업은행 뉴욕 근무를 마칠 때 응시했던 TOEFL 점수를 가지고 직장 학술연수 대상자로 선정되어 2년 후인 1993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소재하는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로스쿨에서 공부할 때의 경험담을 산은 사보에 기고한 것이다. 

 

* SMU International LL.M. Class 1993/94. 앞 줄 맨 왼쪽이 필자

 

미국 SMU 로스쿨에서 만학(晩學)을 할 때에는 너무 고생스러워 빨리 끝나기만 기다렸는데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무엇보다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게 아쉽게 느껴진다. 사실 대학 졸업후 18년만에 우리 말로 된 법서(法書)를 읽어도 제대로 이해가 될까말까 한데, 용어도 생소한 미국법을 영어로 강의듣고 시험까지 보아야 했다. 게다가 학교 강의는 과제물을 예습한 것을 전제로 진행되기 때문에 미리 공부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판례는 단어 하나하나 음미하듯 읽어야 하므로 애당초 속독이 곤란했다.

 

필자로서는 무엇보다도 한 번 외운 것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로스쿨에서는 강의가 케이스 중심으로 진행되므로 우리나라에서와는 달리 세부사항까지는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수업시간중의 케이스 발표는 골칫거리였다. 영화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Paper Chaser)에서도 실감나게 그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미국 학생들도 교수한테 호명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영어가 서툰 외국 학생들은 교수가 내준 과제를 이해하기도 힘든 터에 수업시간중에 이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발표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필자 역시 언제 교수의 호명을 받을지 알 수 없었으므로 이러한 불안을 씻기 위해 그만큼 예습을 철저히 해야 했다. 그런데 무슨 내용으로 답변해야 할지는 알겠는데 그때그때 정확한 법률용어가 입안에서만 뱅뱅 도는 것은 당황과 혼돈 그 자체였다.

 

처음 몇 달간 나는 '모세의 말문을 열어 주신 것처럼 영어가 술술 나오게 해 주십시오'(창세기 4:10) 하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도가 응답된 것인지 차츰 사건 개요를 설명(case brief)하는 요령을 깨닫게 되었다. 교수는 이른바 '소크라테스 방법'을 구사하여 그날 강의의 요점이 발표자의 입에서 나오게끔 질문을 하니까 이것을 징검다리 삼아 대답만 잘하면 되었다. 막히는 용어는 풀어서 말하면 그만이었다.

 

재학 중에는 교수의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했던 이러한 수업방식이 유용하다는 것을 필자로서는 로스쿨을 졸업한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왜냐하면 다다익선(多多益善: The more, the better)이라고나 할까, 필자가 발표했던 몇 가지 케이스는 상당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때 교수의 표정과 함께 전말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케이스중의 하나는 미국법개론 시간에 다루었던 '셰브론' 사건이었다. 환경보호단체가 공기오염물질 배출업체인 셰브론을 상대로 제소하여 1984년 연방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심판한 케이스였다. 호주 출신의 맥긴리 교수는 이 판결에 언급된 법해석 기준이 그후 하급심 판결의 가이드라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오늘의 시간을 즐겁게(?) 해 줄 희생양을 찾았다.

 

이때가 학생들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교수를 마주 바라볼 수도, 시선을 피할 수도 없고, 누군가가 나서서 다른 학생을 편안하게 해주기만 기다릴 뿐이다. 그런데 맥긴리 교수는 "오늘은 코리언 학생이 발표를 해보지" 하는 게 아닌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데 망신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 손을 들고 전날 예습하며 메모해 놓은 것을 토대로 교수의 신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 SMU 로스쿨의 강의실. 사진출처: SMU Dedman School of Law

 

"사건의 개요는?"
"일부 州가 환경청(EPA)이 정한 대기오염 기준을 지키지 못하자 의회는 1977년 대기정화법(大氣淨化法: Clean Air Act)을 제정하여 각주가 대기중 공해물질의 배출허용 기준을 새로 정하도록 했습니다. 환경보호단체는 EPA의 기준이 미흡하다고 보고 대표적인 公害배출업소인 셰브론에 대하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무엇이 이슈였지요?"
"이슈는 EPA가 정한 기준이 그 공장 전체에서 배출되는 공해물질의 총량만 넘지 않도록 기존 공장의 일부 시설만 改替하는 것으로 족한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공장 전체를 하나의 버블(bubble, 공기 방울) 안에 있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 타당한가 하는 게 쟁점이었지요. 법률해석에 있어서 법원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첫째, 법률에 명시적인 규정이 있으면 입법자의 의사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법률에 규정이 없거나 있더라도 모호할 경우에는 행정관청의 해석이 그 법률의 해석상 과연 허용되는 것인지 따져 봐야 합니다."

"잠깐만! 행정부에는 법률상의 갭을 메우기 위한 정책결정과 규정제정의 권한이 있지 않나요?"
"네, 의회가 상세한 규정을 행정부에 위임한 경우에는 그러한 위임입법이 자의적이거나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한 결정적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의회가 위임한 것이 명시적이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지요?"
"그러한 경우에는 법원이 독자적인 해석을 내리기보다는 행정부의 해석이 합리적인가 하는 것만 따지게 됩니다."

 

"그래서 연방대법원은 어떤 결론을 내렸습니까? 레이건 행정부의 출범과 무관하지 않았지요."

"의회의 입법연혁을 살펴볼 때 버블이 무엇인지 규정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으므로, 주무관청인 EPA의 해석이 합리적인 정책대안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당초 EPA는 공기오염물질 배출원을 공장 전체 및 개개의 시설 두 가지로 보았으나, 1981년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완화 차원에서 일부 시설에서 오염물질의 배출이 증가하더라도 공장 전체적으로는 배출량이 감소하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즉 공장 전체에 버블이 씌워져 있다고 보았지요. 이에 대해 환경보호단체에서는 입법취지상 개별적인 시설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대법관들은 공기오염을 방지할 것이냐,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이냐 하는 정책결정은 법관의 임무가 아니라고 했지요. 규제의 내용이 복잡하고 기술적이기 때문에 의회도 행정부에 위임을 한 것이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행정부에서 판단할 사항이며, 법원은 행정부의 법률해석에 무리가 없는지 여부만 검토하면 된다고 말했지요."

 

교수는 셰브론 사건이 미국법의 이정표를 세운 중요한 연방대법원 판결이라고 부연설명했다. 일례로 80년대 후반 미국의 은행들이 증권업무를 취급하고자 했을 때 증권업계에서는 글래스-스티걸법 위반임을 내세워 이의 금지를 명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때 법원은 셰브론 케이스를 원용하여 "금융당국(FRB, OCC)이 취급해도 된다고 판단하였으면 그러한 법률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당시 FRB는 미 은행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글래스-스티걸법을 뒤집어 해석하여(제20조의 문언이 은행으로 하여금 증권의 인수·판매를 주로 영위하는 (engaged principally) 회사와 계열관계를 갖는 것을 금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증권업무의 수입(revenue) 비중이 5∼10%에 불과한 자회사는 둘 수 있는 것으로 해석) 은행의 업무확대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96년 25%로 확대).

 

한편 버블 이론은 공해방지시설을 갖춰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인 공장이 자기네 여유분을 [클린 에어權]이라 하여 無形자산으로 다른 공장에 팔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대법원 판례가 금융시장에 새로운 투자대상을 창출한 셈이다. 또 1997년 교토 환경협약에서는 이산화탄소(CO2) 배출권을 국제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였다.

일반적으로 수업시간에 조리있게 발표를 잘하는 학생은 나중에 유능한 변호사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견지에서 각광을 받는 코스가 로스쿨 1년생이 필수적으로 이수하는 '무트 코트'(모의재판)였다. 무트 코트에서는 상고심에서의 법률논쟁을 테마로 삼는데, 원고 또는 피고측 대리인을 임의로 정하는 만큼 원고측이든 피고측이든 어느 당사자를 위해서든지 조리있게 변론을 맡아 할 수 있어야 한다.

 

* SMU 로스쿨의 Underwood Law Library

 

1994년 4월 SMU 로스쿨에서 개최된 모의재판에서는 텍사스주 대법원 판사 및 연방법원 판사 다섯 분이 심사를 맡아 그 권위와 현실감을 더해 주었다. 여러 달에 걸쳐 토너먼트를 벌이고 결선에 오른 두 팀은 모두 여학생들이었다. 여학생이 로스쿨 재학생의 절반을 차지하게 됨에 따라 여성 법조인이 미국 법률문화의 발달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오늘날 여학생의 우세는 캠퍼스의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1994년 모의재판의 케이스는 다분히 동정심을 유발하는 사안이었다. 유료 양로원에 치매증이 있는 모친을 맡겼다가 사고로 여읜 부인이 양로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건으로, 양로원이 특수관계인으로서 수용자를 제대로 보호·관리하지 못한 데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근거와 일벌백계의 의미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가 주된 이슈였다.

 

'May it please the court'로 시작하는 양측 변호인의 법률주장에 재판장을 비롯한 판사들이 간간이 질문을 던졌다. 나한테는 무슨 말이 오가는지 알듯말듯한데 'Yes, your honor'로 답하는 여학생들의 변론에는 거침이 없었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한다 해도 저 자리에서 재판장이 던지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필자로서는 소송변호사(trial lawyer)가 되는 데 뛰어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게 느껴졌다.

 

필자가 미국 로스쿨에서 수학한 기간은 비록 1년에 불과했지만 보고 배운 것은 한국에서의 법과대학 4년 과정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1995년에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의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여 사법제도를 개혁하자는 논의가 분분하였다. 자격 있는 교수진, 학교시설 등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현행 제도를 개선하면 된다는 대법원측의 주장이 우세하여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비록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필자는 미국 로스쿨에서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또 강의실이나 도서관에서 학교와 교수, 학생들이 합의한 사항에 관하여 각자 성실히 이행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로스쿨에 들어온 이상 예습을 충실히 하여 케이스 메쏘드에 적극 협력하고 자기의 의견을 활발히 개진해야 한다는 무언(無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었다(pacta sunt servanda).

 

미국 로스쿨에서의 1년 (1993-94)

 

UCLA 로스쿨 및 미국 사회 견문기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