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편지글

소박한 삶의 가치 - 미국 애미쉬 마을 (박훤일)

parks6263 2020. 11. 28. 08:02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세상에서 큰 이름을 날리고 많은 돈을 벌어야 어여쁘신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지리산 청학동에도 구식 생활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듯이,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도 문명과는 담을 쌓고 단순.소박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오직 성경을 바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사람들 -- '애미쉬' 교인이 집단으로 살고 있어 우리의 관심을 끈다.

 

영화 속의 현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 '위트니스'(1985)는 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마약 사건을 다룬 경찰 영화임에도 오히려 서정적인 애정물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 것 같다. 남녀 주인공이 그림 같은 펜실베니아 농촌을 배경으로 서로에게 금지된 사랑을 나누는 것이 너무 아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디아나 존스'로 유명한 해리슨 포드가 마약계 형사(존 북)로, '탑건'에 나온 캘리 맥길리스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사는 젊은 애미쉬 미망인으로 등장한다. 문명 이전의 세계인 애미쉬 마을과 범죄가 판을 치는 필라델피아시가 번갈아가며 무대가 되고 있다.

농사 짓는 애미쉬 교인들이 펜실베니아 평원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첫 장면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카메라가 옥수수 밭을 클로즈 업으로 당겼다가 원경으로 밀어내는 사이에 펼쳐지는 바람에 잎사귀 나부끼는 들판의 정경은 실로 기가 막힐 정도다.

영화 속에서 경찰에 의한 주민의 신원파악조차 불가능하다고 한 랭카스터 카운티는 독일계 이민이 많이 이주해온 지역으로 오래전부터 농업과 공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더치 카운티'라고도 불리우는데 이는 화란계(Dutch) 이민이 많아서가 아니라 아직도 독일어(Deutsch)를 쓰고 있는 애미쉬 주민들의 발음에서 지명이 와전된 탓이라 한다. 초콜렛으로 유명한 허쉬 식품회사가 애미쉬 마을인근에 자리잡고 있어 옛날 초콜렛 공장터를 디즈니랜드 처럼 꾸며놓은 '허쉬팍' 또한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영화 속의 무대를 찾아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세상에 이런 낙원 같은 곳이 남아 있나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뉴욕으로 발령이 남으로써 마침내 기회를 얻게 되었다. 미국에 도착한 후 장거리 운전에 웬만큼 이력이 붙을 만하자 나는 영화 속에서 본 지상의 낙원을 찾아가보기로 마음 먹었다.

 

뉴욕에서 펜실베니아 주도(州都)인 해리스버그로 가는 78번 고속도로는 베들레헴, 리딩, 레바논과 같은 이국적인 지명이 눈에 띄는 것 말고는 낮은 구릉과 평야가 이어지는 비교적 단조로운 길이었다. 우리 식구는 허쉬팍(Hershey Park)부터 보고 애미쉬 마을을 구경하는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하였는데 허쉬팍 한 곳만 해도 볼 것이 많았다. 비지터 센터 옆에는 초콜렛 공장 견학 코스가 있었는데 모빌 카에 탄 채로 초콜렛 제조공정을 눈으로 보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출구는 열대 식물원으로 온갖 허쉬 초코렛 제품을 진열해 놓아 저절로 이것저것 사먹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일단 허쉬까지 간 이상 초기 이민사회의 모습을 전시해놓은 허쉬 박물관과 철 따라 장미꽃, 국화꽃을 피우는 허쉬 가든도 빼놓을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한나절을 허쉬팍에서 보낸 뒤 랭카스터 카운티로 향했다. 30번 국도 주변에 즐비한 쇼핑 몰 또한 인상적이었다. 미국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말 그대로 공장도 가격으로 유명 브랜드 제품을 쇼핑할 수 있는 '팩토리 아웃렛'들이었다.

우리 가족은 우선 애미쉬 주민들이 사는 모습을 관광객들에게 유료로 관람시켜 주는 농원부터 들렀다. 전기, 라디오, TV, 옥내배관 수도를 쓰지 않는 주거 생활공간, 말을 중요한 동력수단으로 사용하는 각종 농기구 창고, 담배잎 건조실, 옥수수밭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영화 속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긴 해도 너무 상업화되어 있는 관광 코스라 저으기 실망스러웠다. 천진난만한 애미쉬 어린이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애미쉬 교도의 심플 라이프

영화 위트니스에서 잘 묘사되어 있지만 애미쉬 교도들은 성경해석이 매우 독특하다. 그들은 무슨 일이나 성경을 기준으로 하여 해석하므로 교회와 목사가 따로 없고 마을 원로의 지도 아래 제비 뽑기로 정해진 사람이 일반 가정집에서 예배를 인도한다. 그러므로 어느 집이나 거실에 응접 세트가 아니라 등받이 없는 나무 벤치를 두고 있다.

 

애미쉬 교도들은 화려한 장식이나 오락, 흥겨운 음악조차도 터부시한다. 마약거래를 하는 동료 경찰에 쫒겨 애미쉬 마을로 들어간 해리슨 포드가 총상이 회복된 후 창고 안에서 자동차를 수리하는데 켈리 맥길리스가 들어와 '이 멋진 세상'(What a wonderful world!)이라는 노래에 맞춰 함께 춤을 춘다. 이를 보고 대경실색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재미있다.

애미쉬 교파는 17세기초 유럽의 종교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건너왔다. 퀘이커 교도인 '윌리엄 펜'의 영지였던 펜실베니아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였으므로 그들에게는 낙원이나 다름없었다. 영화 속에서 동생 해산구완차 도회지로 떠나는 며느리에게 나이 많은 애미쉬 시아버지는 지금도 '잉글리시'를 조심하라고 타일르는 것이다. 애미쉬 교도들은 현대문명을 상당히 받아들이고 사는 '세속화'된 메노나이트 교도들에 반대하여 여전히 수백년전의 심플한 생활양식을 고수하며 산다. 애미쉬 마을에는 전기도, 전화도 없기에 영화에서 해리슨 포드가 메노나이트 마을로 가서 전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이들을 지금도 단순하게 사는 '플레인 피플'이라고 일컫고 있다.

 

파라다이스행 열차

우리 식구는 주마간산식으로 애미쉬 타운 관광을 마치고 마지막 코스인 스트라스부르그(유럽의 지명을 붙인 것은 유럽계 이민들이 초기에 정착한 증거일 것이다)로 증기기관 열차를 타러 갔다. 증기기관차는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지만 애미쉬 교도들과 더불어 수백년의 세월이 정지되어 있는 듯한 랭카스터 주변에서는 아직도 정상 운행중이었다. 스트라스부르그에 가보니 애미쉬, 메노나이트 교도들도 휴일을 즐기러 나와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모두 한결같이 남자들은 와이셔쓰에 짙은 색 바지, 여자들은 보네뜨에 하얀 에이프런을 두른 원피스 같은 옷차림이었다. 그러나 술이나 음악이 터부시되는 그들의 여가생활은 매우 단조로와 보였다.

 

우리가 여름이 끝나는 레이버 데이(노동절) 날 파라다이스(Paradise; 樂園이라는 뜻의 지명)로 가는 막차를 탔을 때 객차 안에는 애미쉬 가족들도 몇몇 타고 있어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산아제한을 하지 않는지 아이들은 셋 이상이었고 모두 즐겁게 이야기하며 웃고 있었다.

사실 문명이 인간에게 절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님을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잘 알 수 있었다. 영화 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거니와 그들은 편리한 가전제품 한 점 없이도 노동의 신성함을 알고 꼭두새벽부터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다. 새살림을 차린 신혼부부라든가 창고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온 마을 사람들이 그 집에 모여 힘을 합쳐 창고를 만들어 세우는(Barn Raising) 아름다운 풍습도 남아 있었다. 클라이맥스에서 해리슨 포드가 마약에 오염된 동료 경찰들과 최후의 결전을 벌일 때 이 말없는 선량한 애미쉬 주민들이 그의 편이 되었다.

어느덧 차창 밖에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애미쉬 마을 위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차장은 기차가 파라다이스에 도착하였음을 알렸다. 우리는 모처럼 파라다이스에 도착하였음에도 영화 속에서 악당을 물리친 해리슨 포드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애미쉬 여자 켈리 맥길리스를 두고 떠났던 것처럼 좋던 싫던 이 마을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미 캄캄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우리 식구는 영화 위트니스의 현장을 구경하러 갔다가 인간 생활의 다른 중요한 일면을 위트니스(witness; 목격)한 셈이었다.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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